관해파리의 유영
Ways of Saying: SIPHONOPHORA

기획의 글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인간의 인식능력을 기반으로 감성에서 촉발된 상상력이 기억으로 이어지고, 그 기억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물이 사유라 말한다. 기획전 '관해파리들의 유영(Ways of Saying: SIPHONOPHORA)'은 작가들이 겪어온 사회에 대한 기억과 생각들을 '시각적인 사유'로 해체하고 '전시라는 사건(event)'으로 치환해낸 작업들을 소개한다.

제니스 정(b.1977)은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패브릭과 아크릴물감을 조합하여 형상화한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약자에 대한 폭력 기사를 접하면서 작가는 '내부 공간'이 주는 양면성을 추상적 이미지로 전환시킨다. ● 박경태(b.1978)는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기억이라는 테마를 '므두셀라 증후군'과 연계 짓는다.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고 싶어 하는 인간 본성의 한 부분과 작가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교차되며 아름답지만 슬픈 이미지로 전환되고, 그 안에서 작가는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을 말한다. ● LENA(b.1980)는 모노드라마와 텍스트, 사진 이미지를 결합하여 여성의 몸과 사회 구조를 논한다. 고전 회화에서 드러나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과 현대 의학의 도구들을 사진으로 포착하며 대비시키고, 국가가 제어해 온 출산과 한국 전통의 남아선호사상을 보여주는 기자석을 이미지를 통해 사회 권력이나 관습이 개인의 몸을 통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 김예지(b.1989)는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2차원 평면이 3차원에 존재하는 방식, 3차원이 2차원 안에 표현되는 방식들을 탐구한다. 차원을 벗어나며 생겨나는 경계와 틈을 평면 안에 드러냄으로써 서로 다른 두 개의 차원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분리된 두 세계는 평면 안에서 이질감을 빚어내면서 존재하고 그 자체로 빛나는 이미지들을 통해 분열과 통합이 동시에 일어나는 작가의 세계를 보여준다.

관해파리(Siphonophora) 는 여러 개체가 모여 길게 군체(群體)를 이루는 바다 생명체로, 각각의 유기체들이 섭식과 감각, 이동, 생식 등 다른 생리적 역할을 분담하며 살아간다. 하나로 이어진 개체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의존하면서(colonial organism), 따로 또 같이, 하나의 생명체로 길게 이어진 채 바닷속을 유영하며 살아간다. 독자적인 개체이지만, 서로 의지하며 느린 방식으로 생존해 나가는 관해파리처럼, 각자 다른 영역에서 작업을 수행해온 네 명의 작가들은 자신들이 바라보는 세계와 그에 대한 사유를 자신들의 시각과 방식으로 드러내면서 느슨한 연대감으로 세상을 향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세계에 대해 말을 걸 것인가. 시각 예술은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미지와 기억, 기억이 만들어내는 사유'라는 절차를 걸쳐 네 명의 작가가 함께 고민하고 내놓은 결과물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LENA(레나)